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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is life/골프 정보

역사상 최고의 골프 선수 5인, 그리고 GOAT

by 장파드 2023. 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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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한 페이지에 이름을 남긴 선수들

수많은 프로 골퍼들이 전 세계에서 배출되고 있지만,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 사람들의 입에서 회자되는 선수들은 매우 소수이다. 이번 글에서는 지극히 주관적인 관점에서 오로지 재미와 흥미를 위한 역사상 최고의 골프선수들을 선별해 보았다.

 

5. 'Lefty' 필 미켈슨

필 미켈슨은 커리어 동안 타이거 우즈와의 라이벌 관계로 유명하다. 한국에서는 숏게임의 마술사라고 불릴 정도로 멋진 로브샷을 구사하며 그린 주변에서 누구보다 침착하고 차분하게 플레이한다.

 

필 미켈슨은 젊은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냈던 선수다. NCAA와 US아마추어 대회를 한해에 모두 우승한 유일한 4명 중 한명이다, 애석하게도 그 4명 중 한 명이 타이거 우즈이다. 1993년 필 미켈슨은 PGA투어에 데뷔해 2승을 거두었고, 1996년 타이거 우즈는 PGA투어에 데뷔해 2승을 거두었다. 또한 필 미켈슨은 투어 통산 상금 랭킹 2위에 올라 있고, 1위는 타이거 우즈다. 이렇게 필 미켈슨은 타이거 우즈와 데뷔전, 데뷔 후, 현재까지 계속 비교된다.

 

필 미켈슨은 PGA투어 통산 45승, 6번의 메이저 대회 우승을 했다. 아쉽게도 US 오픈에서 우승한 적이 없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하지 못했다. 불운하게도 필 미켈슨은 US오픈에서 준우승만 6번을 했다. 2021년 5월, PGA 챔피언쉽에서 51세의 나이로 우승을 하며 메이저대회 최고령자 우승 기록을 갱신했다.

 

그의 가족사랑은 너무나도 유명한데, 아내의 출산을 앞두고는 무전기를 착용한 채 투어경기에 임하고, 딸의 졸업식 참가를 위해 투어경기를 포기하기도 했다.

 

필 미켈슨의 별명은 왼손잡이 스윙을 하기 때문에 Lefty라고 불리지만 실제로는 오른손잡이이다.

 

애석하게도 타이거 우즈와 동시대에 태어나 우승기회를 많이 놓친 필 미켈슨은 위대한 2인자로 불린다. 트레이드 마크인 검은색 셔츠를 입고 그린 주변에서 현란한 기술샷을 구사하는 필 미켈슨은 타이거 우즈만 없었다면 아마 역대 최고의 선수가 될 수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4. 아널드 파머, 더 킹(the king)

더 킹이라는 별명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아널드 파머는 시대를 풍미한 스포츠 스타였다. 가장 완벽한 스윙을 가진 골퍼는 아니었지만, 아널드 파머는 골프가 대중화되는 것에 가장 앞서나간 선구자였다. 동시대에 시대를 호령했던 잭 니클라우스보다 트로피 개수는 적었으나, Arnie's army라고 불리는 팬들을 중심으로 한 팬덤은 어마어마했다.

그렇다고 해서 아널드 파머의 우승경력이 부족하다는 것은 아니다, 그는 프로통산 95번의 우승, 62번의 PGA투어 우승, 7번의 메이저대회 우승을 했다. 특히 1960년부터 1963년까지 4년 동안 29번의 우승을 거두었고, 그 기간 동안 매 해 최소한 6번의 우승을 거두었다. 골프 역사상 그 누구도 4년간 매 해 6승 이상을 거둔 적은 없다.

또한 아널드 파머는 골프를 스포츠를 뛰어넘는 하나의 문화로 승화시켰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알록달록한 우산 로고는 의류사업, 음료사업을 통해 골프를 대중화하는데 앞장섰으며, 처음으로 TV골프채널을 만들어내는 것에도 일조했다.

골프의 왕이라는 별명에 맞지 않는 그의 유일한 결점은 그랜드슬램 달성 실패이다. 타이거 우즈, 잭 니클라우스, 개리 플레이어, 벤 호건 등 전설적인 플레이어들이 가지고 있는 그랜드슬램을 아널드 파머는 끝내 이루지 못했다.

그가 유일하게 우승하지 못한 메이저대회는 PGA 투어챔피언쉽이다. 훗날 아널드 파머는 51세의 나이로 Senior PGA투어챔피언쉽에서 우승을 했으며, 그랜드슬램 달성 실패의 아쉬움을 달랬을지도 모른다.

 

3. 현대 스윙의 교과서, 벤 호건

아널드 파머의 스윙이 완벽하지는 않지만 낭만이 있었다면, 벤호건은 아마 가장 아름답고 완벽한 스윙을 가지고 있었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벤 호건의 스윙 철학은 높게 평가받고 있다.

벤호건은 엄청난 골프 연구가였으며 연습벌레였다. 그런 벤호건은 그의 저서인 '벤호건의 다섯 가지 레슨'을 후대에 남겼으며, 6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골프 관련 서적의 베스트셀러이다. 골프 산업의 기술력이 부족했던 1900년대 초중반의 벤 호건의 스윙이 현대 골프 스윙을 정립했다는 평가를 받는다는 것은 그저 놀라울 뿐이다.

벤 호건은 PGA역사에서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5명 중 한 명이며, 타이거 우즈가 달성하기 전까지 한 해에 3개의 메이저대회를 우승한 유일한 선수였다. 또한 그는 무려 64개의 PGA대회에서 우승했으며, 9개의 메이저대회 우승 트로피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벤 호건은 어쩌면 최고의 선수가 될 수도 있었던 골퍼다. 벤 호건은 본인이 출전한 58개의 메이저대회에서 40번 10위 안에 들어갔다. 이는 69%에 달하는 높은 기록인데, 타이거 우즈나 잭니클라우스는 50%를 넘지 못했다. 벤 호건은 커리어 중간에 교통사고를 당해 한동안 대회에 참가하지 못했으며, 비교적 빠른 나이에 무릎이상으로 은퇴했다. 그가 더 많은 대회에 출전할 수 있었다면, 어쩌면 벤 호건은 의심의 여지없는 가장 위대한 골퍼가 되었을 수도 있다.

 

2. 골프의 황제, 타이거 우즈

타이거 우즈의 등장은 골프산업을 뒤집어엎을 만한 파괴력을 가지고 있었다. 떡잎부터 달랐던 타이거우즈는 US 아마추어대회를 3 연속으로 우승하고 나이키와 계약을 하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가 골프 스타의 반열에 오름과 동시에 골프산업은 폭발적으로 성장했으며, PGA투어대회의 상금 규모도 빠른 속도로 상승했다. 타이거 우즈가 프로로 전향하기 전까지 골프대회의 TV시청률은 10%를 넘지 못했다. 하지만 1996년 타이거 우즈가 우승할 때 시청률인 14.1%의 기록은 그의 영향력이 얼마나 컸는지 알려주는 지표이다.

그의 전성기는 실로 어마어마했다. 1997년부터 2008년까지 14개의 대회에서 우승했으며, 2001년에는 4개의 메이저대회를 연속으로 우승한 유일한 선수가 되었다. 2000년 타이거 우즈의 시즌 평균타수는 67.79로 PGA역사상 가장 낮은 기록이다.

통산기록은 PGA통산 82승, 그랜드슬램을 포함한 메이저대회 15승을 기록하고 있다. 타이거 우즈보다 메이저 우승이 많은 선수는 오로지 잭 니클라우스 밖에 없다. PGA 올해의 선수상을 가장 많이 받은 선수도 11회를 기록한 타이거 우즈이다.

이외에도 타이거 우즈가 수많은 기록에 No.1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의 선수생활을 돌이켜보면 타이거 우즈의 라이벌은 작년 타이거 우즈밖에 없다던 우스갯소리가 우스갯소리로 보이지 않는다.

 

1. 잭 니클라우스, 골든 베어

21세기 대중적인 영향력으로만 본다면 타이거 우즈가 GOAT라고 하겠지만, 잭 니클라우스도 GOAT가 될 자격이 충분하다. 18번의 메이저대회 우승과 73번의 PGA대회에서 우승했다. 18번의 메이저 대회우승 기록은 쉽게 깨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가장 근접한 타이거우즈가 15회 우승을 기록 중이다.

또한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잭 니클라우스는 19번의 메이저대회 준우승이라는 진기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1번 하기도 힘든 메이저대회 우승기회가 37번 있었다는 것은 그가 왜 GOAT가 될 자격이 있는지 알 수 있다.

마스터스 6승, PGA챔피언쉽 5승, US오픈 4승, 디오픈 3승 등 그랜드슬램을 3번이나 달성했으며, 기타 대회 우승까지 더해지면 잭 니클라우스의 총 프로통산 우승 횟수는 120회가 넘는다. 80세가 넘어서도 현역을 유지했던 잭 니클라우스는 8번의 시니어 투어 우승을 기록하기도 했다.

재밌는 사실은 그의 별명인 골든베어가 비교적 늦게 붙여진 별명이라는 것이다. 그는 동시대의 슈퍼스타 아널드 파머의 US오픈 우승을 저지하고 첫 메이저대회 우승을 이루어 냈는데, 화가 난 아널드 파머의 팬들은 잭 니클라우스의 푸짐한 몸매를 보고 "Fat Jack"이라는 다소 불편한 별명을 만들어 냈다. 이 별명은 의외로 오랫동안 미디어에서 사용됐다. 다행히도 잭 니클라우스의 인기가 높아질 무렵, 잭 니클라우스는 호주 여행에서 본인의 별명인 골든 베어를 얻게 된다. 골든베어가 된 배경은 단순히 당시 호주 언론에서 잭니클라우스의 호주방문 관련 헤드라인으로 'Golden Bear from U.S. to Arrive Today'를 결정했기 때문이었다. 이를 본 잭 니클라우스가 골든베어가 마음에 들어 본인의 별명으로 정했다고 전해진다.

잭 니클라우스는 당시 빈약한 기술로 만들어진 드라이버로도 골프공을 300야드 이상을 보냈다고 한다.

잭 니클라우스의 꾸준함은 타이거 우즈의 그것과도 비교가 된다. 그는 큰 이슈 없이 PGA선수 생활을 하고 시니어 투어경기까지 섭렵했으며, 코스설계자, 의류사업 등 다른 골프 관련 산업의 발전에도 큰 기여를 했다. 그에 반해서 타이거 우즈는 유명했던 스캔들과 부상으로 인한 기복 등 선수로써의 꾸준함에서 모범을 보이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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